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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이야기를 eKOSTA에 쓸까 말까 망설였다. 그동안 이곳에서 나누었던 최근의 이야기들이 복음에 대한 이야기들이라 좀 다른 내용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아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러 주제들이 내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러가지 주제를 놓고 기도하며 고민하며 몇자 적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eKOSTA페이지 오른편 맨 윗부분에 있는 금년 코스타의 주제로 "복음, 민족, 땅끝"이 내 눈에 확 들어와 그 주제가 마치 활이 과녁에 꼽히듯 내 마음에 박혀 버렸다. 아무래도 다른 내용 보다는 계속 복음행전에 대한 내용을 계속 해야 될것 같은 생각이 나를 지배해 버렸다.

아래의 내용은 미국에 살면서 섬겼던 어느 한인교회에서 실제 있었던 이야기이다. 조심해서 소화 해야할것은 아래의 내용을 읽으며 복음의 열정만 가지고 무조건 교회의 직분자에게 무례히 구원 받았는지 묻고 또 함부로 점근하게 됨으로 교회의 질서를 깨어 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요점은 복음은 교회 내부 라고 해서 제외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의 직분만을 가지고는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같은 점을 고려하며 읽기를 바란다. 

미국살면서 우리는 많은곳을 이사다녔다. 그러는 가운데 어느 지역으로 이사가는 과정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부부가 있다. 나는 이 분들을 생각할때 마다 복음은 교회 밖에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교회 안에서도 전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그리고 전도의 대상도 직분자와 상관 없이 복음을 알지 못하는 대상이라면 장로권사 혹은 안수집사의 직분을 가졌다 할지라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것을 재확인 할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새로운곳에 집을 사러 오면서 이들 부부를 아주 우연히 만났다. 처음의 만남 이었지만 나보다 나이가 더 위이신 이분들과 교제가 처음부터 아주 친근하였다그분들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절하셨고또 겸손하시기도 했다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라 또 진취적이셨고장로님은 경제적으로 어려워하는 지역 교민들을 열심으로 돌보시는 그런 분이셨다.우리와 대화중 남편되시는 분은 그곳 어느 지역교회의 장로로 섬기고 계셨고아내되시는 집사님은 여선교회에서 열심히 섬기시는 교회의 리이더 였다처음의 만남은 우연이었지만 두번째 방문에서는 우리들이 일부러 찾아가 교제를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이후 우리들이 그곳으로 이사간뒤 우리는 그 장로님 부부들이 섬기시는 지역교회를 다니기 시작하였다이로 인해 장로님 부부와 교제는 전보다 더 빈번하여졌다.

여러번의 교제를 가지면서 이분들을 알아 갈 수록 한가지 염려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이분들이 교회를 열심히 다니시고또 성도들을 정성껏 섬기시지만 신앙이 없이 교회생활즉 종교생활을 열심히 하지 않는가라는 염려가 갈수록 짙어 졌다혹 우리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어서 우리는 꾸준히 이분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서 언제고 신앙간증을 들어 보면서 삶을 나누어 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해보았다약 서너달동안 기도하면서 이분들과 별도의 만남 위한 하나님의 때를 살펴보았다.

그러던중 이분들을 저녁식사로 우리집에 초대할 수 있었고그들과 교제하면서 서로의 삶특히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그러던 가운데 우리들이 그분들에게 가진 신앙의 염려가 공연한것이 아니었음을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그래서 담대히 그리스도의 오심과죽으심죄의 문제구원 및 영생에 대한 여러 주제를 가지고 대화를 나누었다혹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또 삶의 주인으로 영접한적이 있냐는 질문에 긍정적인 대답이 없으셨다한참 신앙이야기를 나누다가 장로님은 본인이 신앙이 없음을 우리에게 고백하셨다이미 추측하였던 것이라 우리들을 놀라지 않았고그날 대화를 통해 혹시 복음을 전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다그래서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간략하지만 아주 성경적으로 잘 설명해주는 사영리를 함께 읽어 보지 않겠냐고 제안하였다사영리의 내용과 성경말씀을 나누며 아내와 나는 그분들에게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지 않겠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좀 불쾌한 표정을 지으셨지만 그날은 바쁜일이 저녁에 있어서 얼른 가야할것 같다고 하셔서 복음전도는 거기서 끝났다나중에 안 일이지만 장로로서 자격지심도 있고하여 불쾌하셨다고 하였다심중의 것을 있는 그대로 잘 들어 내실줄 아는 것이 사실상 장로님의 매력이였기에 나는 그분을 몹시 좋아한다.

여하간 그날 이후 우리는 포기하지 않았다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예비하신 영혼임을 분명히 알았기에 더 기도하였고기회를 보다가 그분들이 계시는 일터로 찾아가서 다시 복음을 전했다먼저 우리집에서의 만남과 달리 두번째 전도의 만남은 마음의 문이 더 많이 열린듯 하였다우리들이 대화가 진행되면서 하나님께서는 그분들의 마음을 여셨고그들은 하나님을 자신들의 구원자로 또 주인으로 영접하였다전에 갖지 못했던 놀라운 평안을 밀려온다고 장로님 부인 되시는 집사님의 고백을 들으면서 우리들은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이후 이 두분들을 만나 교제할때 마다 이분들은 자신이 주님과 주님의 교회에 잘못한 것들을 마음으로 회개하시곤 하였다장로로 잘못했던것교회에서 사역하며 주의 진리로 주님을 위해 섬기기 보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 섬겼다고 회개 하셨다시간이 지나면서 이분들이 주님과 가까워 지는것을 보았다물론 한번에 모든것이 변하지 않으시니까 삶의 어려운 부분들에대해 꺼내 놓으면서 기도를 부탁하곤 하셨다. 우리 부부는 그분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사가기전 두분과 함께 우리는 가정예배를 드렸다예배의 기도를 부탁드렸고함께 찬양을 하였고나는 말씀을 전하고… 장로님은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마음을 찟으며 하나님께 부르짖으셨다이제는 새롭게 살겠노라고… 복음의 위력은 대단하다사람의 마음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는새 사람으로 만드는 능력은 바로 복음에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복음은 교회 밖에서만이 아니라 안에서도 전해야 되는 것이다. 또한 직분자라 할지라도 복음을 알지 못하고 종교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들이 기도를 통해 전도해야할 대상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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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가명] 칼빈대학 학생이다. 칼빈대학에는 멘토링 프로그램이 있어서 학교에서 나에게 학생하나를 멘토하면 어떻겠냐고 권유하여 최소한 한해 한명은 기도하면서 성실히 섬길 수 있을것 같기도 하다고 허락하여 만난 학생이 John이다. 나와 John은 격주에 한번씩 만난다. 보통 두시간, 어떨땐 조금 넘을때도 있고 또 모자랄때도 있지만 우리는 정기적으로 만난다.

지난 가을 학기 부터 시작하여 이번 봄 학기 까지 꾸준히 만났다. 만남 초기의 대화는 삶의 문제를 꺼내 놓고 그 해결을 위한 상담이었다.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해결할 만한 능력과 지혜가 없음을 분명히 알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이다. 주로 만남이 있기전 우리의 만남 앞두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고 또 우리의 만남을 의탁드린다. 이렇게 우리들은 만난다.

John뿐 아니라 다른 학생들과의 상담에서도 나는 비슷한 방법을 취한다. 그냥 기도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좀 세련된 방법은 아니고, 좀 무식해 보일 수도 있는 방법이지만 나는 이같은 접근을 아주 좋아한다. 그동안 여러 학생들과 교제하고 상담하는 과정 속에서 얻는 귀한 통찰이 하나 있었다. 엄청나게 멋있게 들려지는 그런 통찰이 아니고 이미 성경에 수없이 많이 제시된 보편적이며 단순한 진리이다. ,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 근원은 하나님을 떠남, 혹은 하나님 보다 나와 사람을 더 의지함에 있다는 것, 그러기에 모든 문제의 해결책은 하나님께 돌아감 혹은 나를 포기하고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함에 기인한다는 성경적 원리인 것이다.

이러한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기도하며 John을 만났다. John은 교회도 다니고 있었고, 또 칼빈대학 같은 크리스쳔 대학을 다니고 있었기에 나는 그가 하나님을 잠시 떠난 상태이거나 자기 중심적 사고를 가지고 사람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우리들의 두번째 만남을 통해 하나님은 John의 문제가 하나님을 떠남에 있는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모르는것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도와 주셨다. 즉 기도중 그같은 의심이 생겨 났고, 구원에 대한 확인이 있어야 한다는 강열한 생각이 솟아난 것이다.

그래서 그 이후 우리의 대화는 복음제시로 방향이 바뀌게 되었다. 처음에 John은 좀 놀라는듯 했지만, 자신의 신앙의 상태에 대해서 매우 솔직했다. 구원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내게 분명히 대답하는 매사 분명한 아이였다. 나는 대화식으로 구약과 신약을 이야기 하며 교제 하였다. 그렇게 몇번을 만나다가, 학기말 시험이후 John과 그의 여자친구를 함께 우리집으로 점심 초대 하였다. John의 신앙상태를 알기 시작하면서, 또 집으로 초대해 놓고 나와 우리 가족은 매일 저녁 John의 구원문제를 위해 기도하였다. John에게 나의 가족도 소개하고, 또 점심을 함께 먹으며 많은 이야기 하다가 기회를 내어 사영리를 가지고 복음을 제시하였다. 놀랍게도 John은 여자친구가 지켜 보는 가운데에서 하나님을 영접하였다. 그날 처음 만났던 John의 여자친구였지만, 그녀는 내게 이 순간을 위해 제법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주었다. 그래서 나도 이 순간을 위해 눈물을 뿌리며 끈질기게 기도하였다고 귀뜸해 주었다. 우리는 함께 하나님의 끈질긴 사랑을 함께 고백하며 주님을 찬양하였다.

하나님의 자녀가된 이후 봄학기에 가진 우리의 첫 만남에서 John은 삶의 여러 문제를 더 이상 가져 오지 않고 신앙성숙과 관련된 질문들을 하였다. 어떤 질문에는 스스로가 묻고 대답하기도 하는데 그 대답들은 John의 신앙 고백으로 들려 졌다. 전에 나누었던 삶의 혼돈 및 장래에 일어날 염려에 대한 질문은 우리들의 대화에 조금도 끼어들 수 없게 되었다. 결국 예수님 없는것이 모든 문제의 근원이고, 예수님 있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임을 다시 실감한 복음전도 였고, 또 멘토링이였던 것이다.

크리스쳔 교수의 참 맛은 학생이 좋은 직장으로 좋은 보수를 받고 일하게 되어서가 아니다. 또 한학기를 잘 가르쳤다고 학생들이 감사로 스타벅스 카드나 책을  선물로 가져다 주어서도 아니다. 학기말에 주로 행해지는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좋아서 또한 아니다. 크리스쳔 교수로서 가장 신나는 일은 강의실과 강의실 밖에서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 그리스도를 모르는 학생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알게되는 일이다. 영원이라는 차원의 엄청난 사역을 보잘것 없는 나에게 맡긴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 하시다. 나는 그같은 하나님이 너무 좋아 오늘도 혹 내게 맡기신 영혼이 없는지 호시탐탐 기회를 옅보게 된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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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법 오래된 이야기다. 아내와 내가 아끼고 사랑하던 자매가 하나 있었다우리 부부와 아이들은 자매의 사랑을 흠뿍 받아왔다자매는 또한 교회에서 열심히 하나님과 지체들을 섬기고 있었고, 그 섬기는 모습은 볼수록 아름답기도 하였지만 은혜가 충만하기도 하였다. 이같은 자매를 형제들이 가만히 두겠는가? 자매는 교회에서 어느 청년과 교제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들의 관계는 아주 가까워져 갔다. 나또한 이 커플의 모습이 보기 좋아서 제법 흐뭇해 하였고다른 지체들도 둘의 사귐을 기뻐하고 있었다선남.선녀라는 말이 너무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한쌍같아 보여서 흐뭇해 하였다.

그런데 어느날 저녁 늦게 자매로 부터 다급한 전화가 걸려 왔다자신과 별거중인 남편이 미국에 막 도착하였고자신을 찾고 있으며, 만나게 되면 자기에게 해를 가하게 될것이라는 이야기 이다전 남편이 대화중 자매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라는 전화협박이 있었기에 자매와 남자 친구는 얼른 경찰에 신고도 하였고경황을 따질것 없이 형제는 자매를 보호하려 애를 쓰고 있었다더우기 별거중인 남편은 해병대 출신으로 성격이 포악하기도 하여 같이 살 수가 없었다고 하며 염려를 하고 있었다자매가 결혼했다는 사실 자체도 내게는 충격이었지만 본능적으로 우선 자매를 보호 하는것이 급하다는 생각에 유학전 자매의 삶에 대한 질문은 접어두고 문제 수습에 골몰해 있었다.

기도하며 그 다음날 사태 수습을 위해 하나님께 묻기 시작 하였다하나님왠 날벼락 입니까어떻게 해야 이 날 벼락을 피할 수 있나요뭐 이렇게 다급한 기도를 했던것 같다아침이 되어 자매로 부터 또 전화 왔다.어느 어느 호텔에 있으니 이 자매가 찾아 오던가아니면 자매가 살고 있는 아파트를 그 별거중인 남편이 찾아가겠다는 것이다그 상황에서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두 세가지 뿐이었다호텔 이름폭악하다는 별거중 남편그리고 이들이 만나면 위험할 것이다 라는것. 다시금 기도하다가 평소에 없던 용기가 솟아 낫다이 방분자에게 복음을 전해야 겠다는 생각과 아울러 얼른 한국어로 된 사영리 두권을 찾아서 주머니에 넣었다그리고 그 호텔을 내가 찾아 가겠다고 하였다자매의 남자 친구가 위험하다고 말렸지만내 안에 솟아나는 용기는 형제의 경고를 거부할 수 밖에 없었다결국 형제는 내게 부탁을 하나 하였다그 방에 들어가면 문을 닫지 말고 조금 열어 놓으라는 것이다쿵쾅거리며 몸 싸움이 나면 자기가 곧 바로 뛰어 들어 상황을 제압 하겠다는 것이다

사실 평소 나는 선한일을 위해 위험한 일에 뛰어들 용기와 배짱이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당시 내게 딸린 두 아이가 있었고, 또 사랑스런 아내가 있어서 그같은 위험은 누구보다도 가장 먼저 피해가고 싶을 정도로 안전을 택하는 그런류의 사람이다몸싸움이 나면 몸을 방어할 정도로 힘도 넉넉히 있다고 생각치도 않았고, 더우기 멀리서 부터 원한을 품고 달려온 사람의 힘을 당해낼 자신이 있을 정도는 결코 아니었다그러나 나같은 사람이 이렇게 용기를 낸것은 분명 성령님의 강권적 역사임을 나는 어느 누구 보다도 잘 알았던 것이다복음을 위해 죽으면 죽으리라는 배짱은 나의 선함으로 나올턱은 전혀 없고분명 하나님의 복음전파에대한 열심이 내 안에서 느껴진 것이다내 안에 솟구치는 사랑특히 아픔을 가지고 미국 까지 달려온 그 방문자에 대한 불쌍함이 내게 가득차 있는한 가만히 사태를 불구경 하듯 바라볼 수만은 없었던 것이다.

결국 나는 한국에서온 방문자의 호텔을 향해 운전해 갔고, 그의 방 번호를 찾아 문을 두드렸다문이 열리면서 방에 들어 서는 순간 방이 참으로 어둡다라고 느꼈다그 방문자는 문을 열어 주고는 침대가 둘 있는 방중 구석 침대로 얼른 걸어가서는 침대위에 곧곧이 앉아 있었다그리고 침대 중간에 전화를 놓는 탁자위 불이 조금 어두운 빛을 내고 있었다어색함을 깨려고 얼른 나의 소개하였더니이미 나에 대해 들었다고 하며 아내를 잘 돌보아주어 고맙다고 굳은 표정으로 인사를 하였다.

그뒤 나는 바로 그 방문자에게 약 5분간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뒤에 사영리 하나를 그의 손에 들려 주고나는 다른 사영리를 들고 한 페이지씩 읽어 나갔다그리고 페이지 마다 간단한 설명을 더해 주었다.순한양 같이 가만히 듣고 있는 그 방문자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세번째 영적원리 부분에서 예수 그리스도만이 사람의 죄를 해결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부분을 다룰때 방문자의 얼굴이 이그러 졌다. “이제까지 잘 참았는데 드디어 참기 어려워 이 막 폭팔하려나?”라고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사태를 파악하려 애쓰고 있었다다행히 아무런 저항도 없어서 네번째 원리까지 진행 시켜 나갔다나는 용기를 내어 네번째 원리를 직접 소리내어 읽으라고 부탁하였다그 방문자는 또박 또박 읽어 내려 갔다. “우리 각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영접하겠습니까?” 물었다. 1-3원리를 어떻게 이해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잠시 침묵이 있었다 1분 이었겠지만 내게는 제법 길게 느껴 졌다그러던 그가 한참만에 !”라고 말하며 흐느끼는 인기척을 듣고는 정신을 차렸다나는 얼른 정말요?”라고 하며 당황하며 영접기도를 인도하였다" ... 지금 나는 내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님을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합니다 ..." 

얼굴에 가득한 그의 눈물을 보며 축하해 주었다눈가를 타고 흘러 내리는 그의 눈물은 설움과 섞여 있었는지 하염없이 솟아 내렸다내가 축하하는 의미로 시간은 좀 이르지만 점심을 사겠다고 하였다한국에서 출발하여 비행기를 타며 분노로 인해 식사도 하지 못하고또 미국에 도착해서는 먹는둥 마는둥 하여 배가 몹시 고팠다고 하며 우리는 함께 중국집을 향해 걸어 나갔다.

나를 따라 오는 형제 ("방문자"라는 호칭에서 "형제"라는 호칭으로 바뀌었다)의 얼굴을 장난스레 쳐다 보았다거짓말 같이 그의 딱딱하고 분노에찬 얼굴이 펴지고밝은 햇살을 바라보며 햇살이 너무 이쁘다고 말했다그러더니 평범한 도로변의 가로수 나무를 보더니 나무가 참으로 아름답다고 표현하였다함께 아점 (아침 점심)을 먹은뒤자매를 만나겠냐고 물었다고개를 양쪽으로 저의면서 만나지 않고 한국으로 바로 되돌아 가겠다고 하였다그러나 부탁이 몇개 있다고 하였다첫째로 자신을 공항으로 데리고 갈 수 있냐는 것이었다두번째는 자매와 사이에 세살짜리 딸 아이가 있는데다른 날은 몰라도 생일은 기억하여 꼭 선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해주라는 말을 아이엄마에게 전해 주라는 것이었다세번째는 자기가 선물을 살 기회가 없었는데 자기가 현금을 조금 줄테니 나의 두 자녀에게 선물을 사주라는 이야기 였다첫번째와 두번째 부탁은 수락 하겠지만 세번째는 굳이 안해도 된다고 강하게 사양 하였다. 그러나 형제의 간구가 너무도 진지할뿐 아니라 형제를 자유롭고 편하게 해주기 위해 결국 돈을 받았다.  

나는 공항에서 돌아오며 한참을 울었다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먼곳에서 이렇게도 보내시는 하나님의 진한 사랑에 감동해서 였다. 마침 차안에 틀어 놓았던 CD의 곡중에 송정미 사모의 "매일 스치는 사람들"이라는 찬양이 흘러 나와 따라 부르며 이상한 방법으로 그 형제를 이곳에서 만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매일 스치는 사람들 내게 무얼 원하나 공허한 그 눈빛은 무엇으로 채우나 
모두 자기 고통과 두려움 가득 감춰진 울음소리 주님 들으시네
(후렴)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깨지고 상한 마음 주가 여시네
 그들은 모두 주가 필요해 모두 알게 되리 사랑의 주님
캄캄한 세상에서 빛으로 부름 받아 잃어버린 자들과 나누라고 하시네
주의 사랑으로만 사랑할 수 있네 우리가 나눌 때에 그들 알겠네

우리의 생활의 주된 터전인 이곳 미국 캠퍼스로 보내진 많은 청년들이 있다. 하나님은 내가 전에 만났던 그 형제에게만 그같은 구원을 위한 열심이 있는것 만은 아니다. 주변에 스쳐 지나가는 많은 캠퍼스의 청년들 또한 하나님께 돌아 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열망이 있으시다. 상한 마음, 빈 마음, 지친 마음에 필요한것은 복음이다. 오늘날 캠퍼스에 가장 중요시 여겨져야할것은 학위가 아니고 복음이다. 이것이 뒤 바뀌는한 우리들의 캠퍼스는 계속 죽음의 행진을 하고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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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타 2010/05/08 14:57  Addr Edit/Del Reply

    아멘. 귀한 나눔 감사합니다.

학기말이라 분주하다. 한학기 내내 학생들이 열심히 준비한 텀 페이퍼를 채점하여 학생들에게 돌려 주는 과정에서 몇 학생과 심각한 대화를 나누었다. 학생들은 대화중 눈물을 흘리기도 하였고 (여학생들은 잘 운다), 몹시 흥분하며 화를 내기도 하였다 (남학생의 경우 잘 흥분하지만, 이 부분은 남.녀가 비슷하다). 한결같이 나의 기대치가 너무 높다고 비판도 하였다. 개별적으로 이루어진 만남이었지만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통점 하나를 전에와 마찬가지로 금년에도 발견 하였다. 즉 실라버스 (Syllabus; 강의안) 를 대충 읽음으로 오는 문제인 것이다. 

학생들이 텀 페이퍼를 작성할때 범하는 몇가지 실수중 하나는 실라버스를 주의깊게 읽지 않는 것이다. 보통 실라버스 에는 교수의 강의 계획서와 기대 및 텀 페이퍼 작성 안내가 나온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보통 세부적인 계획을 학생들에게 제시 하며, 학생들이 그 계획을 잘 따라 주기를 기대한다. 교수가 실라버스를 작성할때는 그냥 하루아침에 기분에 따라 작성하는것이 아니고 전문분야의 특성과 세상환경의 변화에 따라 학생에게 가장 유익할것이 무엇인지를 충분히 고민한 후에 작성하는 것이다. 그리고 작성된 실라버스는 매해 마다 조금씩 바뀌어 간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있거나, 지난해 도움이 되지 않았던것들, 또 학생들에게 혼돈을 주었던것들을 기억하며 보강해 나가기도 한다. 이런 과정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가장 유익할 과제를 철저히 검토한뒤 실라버스에 학생들이 반드시 다루어야할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는다. 따라서 실라버스는 어떤 점에서 학생들이 충분히 소화해야할 아주 귀중한 자료인것이다. 그리고 실라버스는 어떤점에서 교수와 학생이 맺는 계약서 같은 것이다. 어떤 교수는 실라버스 맨 뒷장에 학생들이 "본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었고, 주어진 계획에 동의함"이라는 내용을 적고 학생들이 서명을 하게 한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은 학생은 어떤 과제가 주어졌는지 그냥 대충 감을 잡을 뿐이다. 텀 페이퍼 쓸때로 대충 이해한대로 쓴다. 이해는 대충 하였지만, 많은 유학생들의 경우 A+를 받으려고 밤잠을 설치기도 하고 한학기 내내 고생하며 작성한다. 그리고 혁신적인 생각이 떠오를 경우 흥분까지 해가면서 글을 작성한다. 열심히 정성껏 글을 쓴 학생은 텀 페이퍼를 낼때에 A혹은 A+를 기대한다. 그런데 왠 일인가? A+대신 C, D, 혹은 Redo (다시 써라)라는 결과를 받는다. 경악을 금치 못하고, 흥분해 하며, 더러는 울기도 하며, 분노를 가지고 교수를 찾아 간다. 나는 잠도 많이 줄이며, 도서관에서 살다시피하고, 수 많은 책을 참고로 하여 연구하고, 또 걸으면서 음식을 먹으면서도 텀 페이퍼만 생각하면서 고생하였는데 내게 돌아온 결과는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유학생의 경우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혹시 미국인 교수가 내가 동양인이기 때문에 인종차별을 하지 않나 의심하면서 분개해 한다.

교수의 반응은 간단하다. 나는 너에게 시카고로 가는 가장 좋은 운전길을 연구해 오라고 하였는데, 너는 뉴욕으로 가는 길을 적어왔다. 그러나 네가 적은 뉴욕가는 길은 내가 지금까지 읽어본 그 어떤 방법보다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는 시카고가는 길을 적지 않았기 때문에 좋은 점수를 줄 수 없었다. 이같은 반응은 실제 교수가 그같은 내용의 과제를 주어서가 아니고, 교수가 쓰라고 한 방향을 무시하고 학생 스스로가 추측하고 생각한 방향으로 글을 썼을때 좋은 점수가 나올 수 없음을 은유적으로 표현해 본 것이다. 

지난주 내 사무실을 다녀간 티나의 케이스가 아주 좋은 예가 될 수 있다. 티나는 나의 "여가 철학"이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그 수업에는 많은 과제가 있는데 제법 점수의 비중이 큰 과제중 하나는 크리스쳔의 관점을 가지고 여가 (Leisure)의 철학을 논술하라는 것이다. 그같은 관점을 돕기위해 그동안 학생들이 학교에서 배운 기독교 세계관으로 여가를 바라 볼것과, 성경의 원칙과 여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여가의 관계등에 대한 Guiding Questions도 실라버스는 분명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티나가 준비한 글은 여가의 철학이 아니였고,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철학이었다. 크리스쳔의 관점도 고려하지 않았고, 기독교 세계관에 대한 언급도 전혀 없었다. 무엇이 티나로 하여금 본 과제의 특성과 빗나간 글을 쓰게 하였을까 이해 보려고 잠시 애써 보았다. 아마도 내가 치료레크리에이션을 주로 가르치는 교수라는 인상 때문이었을까? 본인의 전공이 그것이니 이번기회에 철학적 정의를 해보고픈 개인의 욕망때문이었을까? 어찌하였든 티나는 과제의 요구사항을 철저히 빗나간 글을 쓴 것이었고, 이로 인해 본인이 기대하지도 않던 권총 (F)을 하나 찬 셈이 되었다. 

실라버스를 대충 읽는 다른 케이스가 있다. 어제 사무실을 다녀간 캔디스라는 이름을 가진 학생의 경우가 아주 적절한 실례가 될 수 있다. 캔디스는 페이퍼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교수가 실라버스에 요청한 내용을 철저히 다루지 않았다. 캔디스가 듣고 있는 과목은 치료레크리에이션의 원리라는 과목으로서 요즘 미국의 Health Care System의 Issue에 대한 과제가 있다. 실라버스에는 그 과제에 대한 목적과 요구항목이 구체적으로 적혀있고, 이를 강의실에서 설명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Issue의 선택은 학생이 교수의 동의하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Issue에 대한 과제를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Issue를 자세히 소개 하게 하였고, 선택된 Issue와 관련된 과거 역사적 사실들, 현제의 상황, 그리고 그것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 요소, 연구결과를 중심으로 한 제언등을 다루라고 분명히 적고 있다. 뿐만 아니라 각 항목은 특정 점수를 부여하게 되어 있어서 그같은 내용을 다루지 않으면 점수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캔디스의 경우 Issue에대한 나의 동의는 받아내었지만 내가 연구하라고 실라버스에 요구한 구체적 항목들은 일부 다루지 않았다.  대신 내가 실라버스에 요청하지 않은 다른 항목들을 아주 장황하게 조사하여 보고 하였다. 요구한 항목중 잘 다루어진 부분은 실라버스에 적힌대로 점수를 받았지만, 다루지 못한 부분은 아무런 점수를 받을 수 없었다. 그리고 본인이 열심히 썻으나, 내가 실라버스에서 요청하지 않은 부분에서는 아무리 훌륭하게 연구하였어도 아무런 점수를 받지 못했다. 받은 점수를 모두 합해 보니 많은 부분에서 점수가 부족하여 결국 캔디스는 권총 (F)을 하나 받아야 했다. 

실라버스를 철저히 읽는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당연한 것을 소홀히 함으로 큰 실수를 범할 때가 많이 있다. 무엇을 만들고 조립할때 그 물건을 만든 회사가 소비자를 위해 만들어 놓은 "매뉴얼"을 보고 그대로 따라 가면 쉽게 조립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메뉴얼을 무시하고 나의 꾀와 직감을 가지고 그냥 조립하려고 할때 당하는 어려움이 좋은 예이다. 기본과 당연한것을 무시하지 않고, 조그만 것 일지라도 성실한 크리스쳔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완벽한 실라버스를 만들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그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살아가고, 어떤 이들은 무시하고 살아 간다. 또 어떤 이들은 일부는 따르지만, 다른 부분은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간다. 과연 나는 하나님의 실라버스 대로 (성경대로) 살아 가고 있는가? 아니면 내가 추측하고 편리한대로 하나님을 좇는가? 인생의 실라버스를 충실하게 읽고 주님을 좇아야 할 것이다. 당연한것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 가다가 도착지 (finish line)에 섰을때 나의 달음박질이 헛된것이 되면 어찌할 것인가? 한번 심각히 우리의 삶을 돌아 보아야 할 것이다.
운동 경기를 하는 사람이 규칙대로 하지 않으면 월계관을 얻을 수 없습니다 (딤후 2:5; 표준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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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eKOSTA 2009/12/23 02:09  Addr Edit/Del Reply

    관리자가 본문과 무관한 댓글을 삭제하였습니다.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시면 관리자에게 메일로 연락 주십시오 (ekosta@kostausa.org).

나는 가끔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 죄가 관영하는 이 세상에서 미끄러짐 없는 신앙생활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나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실천하며, 거룩한 신앙인으로 책망할것 없는 삶을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숨쉬기를 할때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들이마시고 내어 밷을 수 있듯, 주의 말씀을 그렇게 자연스레 순종해 가며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야무진 공상일까?

 위의 질문 뒤에는 나의 미끄러짐으로 인한 아픔이 숨어 있다. 내게 있어 미끄러 졌다는 것은 하나님을 따르며 순종하는 삶에서 벗어났다는 표현이다. 그것은 크게 벗어났던 작게 벗어 났던지간에 내게 있어서는 미끄러짐이다. 특히 같은 상황에서 똑 같이 미끄러 넘어졌을땐 더욱 더 처절하게 느껴져서 나의 한심한 신앙생활로 인해 눈물을 그렁이며 아파하기도 한다. 더우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랑하는 가족들이 보는 데서 미끄러졌을 경우 나는 더욱 좌절한다. “그렇게 살아 가면서 어떻게 캠퍼스 사역한다고 하고, 교회에서 설교 하고, 학생들 상담하지?” 라고 묻는것 같다. 아 내게 이같은 미끄러짐이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대부분의 미끄러짐에는 나의 부주의가 많다. 미끄러운곳을 걸어갈때는 긴장도 해야 하는데 그냥 방심하고 진행할때 미끄러진다. 내 발걸을음 잘 점검하지 못하고, 주변의 환경을 기도를 통해, 또 말씀을 통해 분별해 가면서 지혜롭게 가면 미끄러짐을 극소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영적 부주의는 미끄러짐을 경험하게 한다. 늘 익숙해진 대학 캠퍼스가 내 생활의 주요 무대인 나에게는 영적인 긴장감을 갖기 보다는 늘 가던곳이고 하던 것이니 방심하게 된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 이다. 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편안한 가족이기에 말에서나 행동에서 실수할때가 있다. 아내에게 무례한다던가, 아이들의 말을 온전히 귀담아 들으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일에 방심하고 있을때가 있다. 

일상생활의 부주의가 미끄러짐의 일차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내게 있어 정말 중요한 장애물은 나의 교만이다. 나의 교만은 하나님을 의지함 보다 나의 경험과 지식을 의지할때 흔히 나타난다. 나의 경우 교만은 나 혼자 할 수 있다라는 생각으로 나타난다. 나의 선택과 나의 길이 더 안전해 보이고 더 지혜로와 보이는 것이다. 그같은 교만은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향해 가기 십상이다. 그러기에 이같은 생각이 내게 들어온 순간 나는 이미 미끄러진것이나 다름없다. 이같은 교만은 하나님 보다 나를 더 중요시 하게 된다. 일단 그같은 상황에 놓이면 세상것이 주님보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되고 하나님 나라보다는, 내가 나를 위해 만들고 싶은 그런 세계 및 상황을 바라게 된다. 이쯤되면 또한 내 왕국을 만들어 보려는 동기로 먹고 마시며, 뛰고, 쉬고, 일하게 된다. 나는 이같은 상황을 미끄러져 내동냉이쳐 졌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빼먹지 말아야할 중요한 이유가 또 있다. 미끄러짐은 나의 회개의 문제와 아주 깊숙히 맞물려 있다. 입으로 하나님께 잘못했다고 기도하기만 하면 그냥 자동적으로 용서 받는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는다. 신앙생활 초기 특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진적이 있었다. 이같은 회개는 변화를 동반하지 않기에 똑같은 자리에서 다시 미끄러지는 가능성을 크게 열어 놓게 된다. 그러나 때론 입술의 고백을 떠나 마음의 고백까지 가는 경우도 있었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아픈 마음으로 주께 용서를 부르짖는다. 입술의 고백보다 좀더 발전된 방법 같아 보이지만 이같은 방법은 도덕적 회개에만 머물 수 있어 또 다시 미끄러지게 한다. 참다운 회개는 가던길에서 거꾸로 되 돌아서야 된다는 결단과, 실제 삶의 현장에서 돌아서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가던길을 돌어서긴 했지만 다시 돌아가지 못하게 해 달라고 주님께 간구하며 그 눈을 뒤로 돌리지 아니하고 주님을 응시한채 걸어가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이고 또 미끄러짐의 가능성을 기본적으로 제거하는 방식이다.

유학생들과 삶을 나누며 대화하다보면 미끄러짐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 코스타나 교회의 수련회등 여러 집회를 통해 많은 은혜를 체험하고 이제부터는 바른 신앙생활 해보겠다고 마음먹고 헌신하려 하였지만 삶에 현장에 되돌아 왔을때 바로 미끄러져 버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며 좌절해하며 힘을 잃는다. 신앙생활에서 미끄러진채 거기서 그냥 멈출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복음의 힘은 넘어 지지 않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넘어지고 부딛히고 깨지며 살아갈때 우리를 세워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삶이다.나의 아이들과 아내는 내가 미끄러지는 것을 보아 왔다. 그러나 그들이 이제 분명히 아는 것 하나 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가 전에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아빠를 세워주실 것이다 라는 것을 믿는 믿음이다. 넘어 지는 나를 믿기 보다 나를 늘 세워 주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다. 나의 세 아이들은 나의 거룩한 삶 혹은 거룩을 향한 삶을 보고도 살지만, 나같이 연약한 사람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사용하시고 세워 가시고 만져가시는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를 보며 변화해 간다.

과연 영적 미끄러짐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이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많은 성숙한 그리스도인들마다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연약함과 죄성으로 미끄러지고 깨어지는 많은 체험들이 있을 것이다그러기에 그것과 싸우는 대처방법이 다를 수 있을지 모르겠다그러나 나는 새벽이슬과 같은 믿음의 청년들에게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는 반드시 나누고 싶다.

첫채로 삶의 목표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유학생활의 목표가 학위취득에 있는것이 아니라 거룩함 추구를 그 우선순위로 놓아야 한다. 이제 구원을 받았기에 천국은 보장되어 있다는 생각에 신앙의 선한 경주를 멈추고 땅에 주저 않아 쉬고 있어서는 안된다. 공부하며 순간 순간 십자가를 바라 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한다. 주님을 나보다 더 사랑해야 한다. 하나님 면전에서의 삶, 즉 코람데오의 삶을 살도록 주님과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늘 동행한 에녹처럼, 오늘날 유학생들은 성경에 한줄밖에 나오지 않은 평범한 신앙선배인 에녹을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거룩한 삶을 소망하고 그리스도의 성품이 학업의 우수성보다 더 귀하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목표가 있어야 하고, 이를 위한 헌신이 있어야 한다.

두번째는 나의 죄성을 심각히 자각하는 것이다. 구원은 받았지만 내 안에 남아있는 옛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를 향해 맹렬히 달려가고자 하는 죄성이 있음을 의식해야한다.  이것을 온전히 자각하게 되지 않으면 죄의 속임에 쉽게 미끄러져 버린다. 그러나 그같은 죄성이 내 안에 있음을 깨닫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그냥 미끄러져 버릴 수 없는 우리의 삶임을 순간순간, 삶의 모든 상황속에서 인정하는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믿음을 발전 시킨다. 따라서 캠퍼스에서든, 캠퍼스 밖에서이든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깊숙히 생각해야 한다. 십자가를 젖은 눈으로 바라볼때 우리는 나의 죄악들과 세상에 관영하고 있는 죄악들에 대해 치를 떨며 미워해야 한다. 그러나 거기서만 멈추지 말고, 십자가에 그리스도를 못박으시면서 까지 우리와 화목을 원하셨던, 그리고 그 화목을 위해 기꺼이 십자가에 오르셨던 그리스도를 바라 보며 큰 사랑에 감격해야 한다. 미끄러져 넘어져 있을때 우리가 일어설 수 있는 것도 그 사랑때문이다. 그러나 죄에 대해 소름끼치는 미움이 없이 일어 선다면 또 미끄러질 수 있는 우리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이 두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밖에 성도의 교제를 통해, 그리고 매일 매일 말씀묵상을 통해, 예배를 통해 우리는 깨어있어야 한다. 미끄러짐 없는 똑 바른 걸음을 걷기 위해 우리는 순간 순간, 매일의 삶이 예배가 되도록 해야 한다. 나는 이글을 마치며 우리들처럼 미끄러짐의 아픔을 경험한 바울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상기시키고 싶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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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eKOSTA 2009/11/20 09:54  Addr Edit/Del Rep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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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 지체들을 만나면 그들의 손에 이끌려 자주 별다방 (Starbucks Coffee Shop)으로 가곤 한다. 구석에서 커피 홀짝 꺼리며 나누는 여러 대화들이 있지만 그중 흔한 문제가 관계에 대한 것이다. 여러 지체들을 만나 그들의 대인관계의 여려움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움을 격고 있는 씨름 하는 대상은 다양하다: 지도 교수, 교회의 어느 집사님 혹은 지체, 같은과 학생, 실험실의 어떤 괴팍한 녀석, 아내 혹 남편, 소그룹의 리이더...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경험한 어느 동료 교수와의 문제가 늘 생각난다. 그래서 인지 그들이 격고 있는 아픔을 잘 이해 할 수 있고, 또 그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그들에게 들려 주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나의 블로그에 이미 다른 제목으로 나왔지만 "유학생활"이라는 카테고리에 없었던 것이라 이곳에 소개해 본다.

나의 힘으로는 도무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하나님 때문에 사랑 하게 된적이 있다. 지금 나는 그것을 하나님의 기적으로 보고 있다. 내가 기적을 일으킨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진리말씀이 기적을 시작하였고, 그 말씀이 나의 순종을 통해 구체화 된것 뿐이다.

그 기적은 오래전 사랑이야기다. 당시 나는 어느 주립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그곳에 부임하던 첫해에 같은 전공을 지도하던 어느 여자교수가 정년 (tenure)을 받지 못하고 떠나는 사건이 생겼다. 워낙 성실했던 동료였는데 나는 제법 놀랐다. 나중에 누가 귀뜸해주기를 그 교수는 연구 실적이 많이 부족해서 테뉴어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여하간 나는 졸지에 동료를 그렇게 잃어 버린셈 되었다. 

결국 후임을 뽑아야 하였고, 시간이 부족했던 관계로 급속한 속도로 청빙위원회가 구성되어 교수를 뽑기로 하였다. 제한된 시간속에 광고 되었으니 제한된 숫자의 응모가 있었다. 그러나 적은수의 응모자 중에서 청빙위원회는 어떤 두 applicants를 학과장에게 추천했다. 그러나 학과장은 청빙위원회의 추천을 무시한채 어느 대학에서 교수를 하고 있던 응모자와, 청빙위원이 추천한 두명과 함께 초대하여 인터뷰를 진행 시켰다. 물론 청빙위원의 추천에 속하지 않았던 세번째 그 여교수를 모두 기뻐하지 않았다. 결국 학과장은 세번째 여교수에게 좋은 조건으로 오퍼를 하였다. 이유인즉은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었다. 

그때 채용된 여자 교수의 이름은 티나 (가명) 였다. 나와 티나는 그렇게 만났다. 키도 나보다 훨씬 크고, 금발머리였고, 목소리는 우렁차고 공격적이었다. 표정은 항상 경직되어 있었고, 자기 주장이 몹시 강한 사람 같았다. 교수회의에서는 유독 자기 생각을 분명히 나타내기도 했고, 어떨때는 심각히 따지기도 하는등 다른 교수로 부터 적개심도 유발할 정도였다. 강의실에서도 여전하여 학생들로 부터 환영 받지 못하고, 여러 학생들이 강의를 더 들을 수 없다고 할 정도로 티나의 시작은 많은 잡음을 내고 있었다. 

티나가 나보다 대학에 더 오래 있었던 이유로 인해 그녀는 나의 전공분야에 코디를 맡게 되었다. 둘이서의 대화는 일방적이었다. 나의 의견을 수렴하기 보다는 자신의 생각을 그냥 밀고 나가는 스타일이었다. 동료 교수들도 힘들어 하였고, 학생들과 나 또한 어려움을 겪었다. 같은 전공이라 티나를 advisor로 둔 학생 30여명은 티나를 찾기 보다 나를 찾음으로 나의 생활은 더 바빠 졌다. 티나로 부터 받은 어려움과 부당한 대우를 호소하는 학생들을 매번 상담해야 하였다. 나또한 티나로 인해 어려웠음으로 나도 상담자가 필요했다.

그래서 새벽 기도때 나는 하나님께 강하게 호소 하였다. "나를 그곳 대학에서 떠나게 하던지 티나를 떠나게 하던지 주님 알아서 하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대들기도 했다. 몇달을 기도했지만 티나도 그곳 주립대학에 있었고, 나도 그대학에 있었다. 무너지기를 갈망했던 나의 여리고성은 무너지지 않고 그냥 버티고 서 있었다. 그 답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죽을 맛이었다. 그뿐 아니라 우리들의 어려움은 더 어려워져 갈 뿐 호전의 기미는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말씀을 읽는데 "티나를 사랑할 수 없겠는냐?"라는 세미한 내적 음성이 들리는듯 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이 나로 하여금 티나가 내 이웃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하기를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동의 하는 움직임이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강하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즉시 뿌리 쳤다. 내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내 학생들은 사랑할 수 있지만 티나는 할 수 없다고 고개를 좌우로 저의며 강하게 부정했다. 결국 그날의 기도는 중간에서 멈추고 교회를 뛰쳐 나왔다.

문제는 그 뒤에 또 생겼다. 매번 새벽 기도시 읽는 본문 말씀중 "사랑"이라는 단어는 나로 하여금 티나만 생각나게 만들었다. 나는 괴로 웠고, 또 부정하며 교회를 나왔다. 세번째에 똑같은일이 반복해서 생기자 나는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위해서도 나는 더 이상 도망다닐 수 없었다. "주님, 싫지만 순종하겠습니다!"

그날은 순교할 각오로 학교에 출근했다. 아침 부터 가슴이 쿵쾅거리며 견딜 수 없었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마자 티나의 방을 노크하였다. 티나가 없기를 진심으로 바랬지만 불행히 그녀는 그곳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노크를 했기에 문은 열렸고, 문을 열어 주었기에 나는 들어가 앉아야 했다. 나는 몹시 경직 되어 있었다. 평소 만날때도 경직 되었는데, 그날 사랑을 고백 하려니 죽을 맛이었다.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며 내 얼굴을 응시 하는 것이었다. 사랑을 고백해야 하니 우선 사무실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래서 문을 닫아도 되겠냐고 경직된 얼굴과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이지"라는 대답과 함께 문을 닫았지만 긴장 떄문에 좀 세게 닫은것 같다. 화난 동양 녀석이 인상쓰고 아침 부터 들어와 문을 쾅 닫았으니 티나의 표정도 긴장으로 가득해 보였다. 

말을 하자니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사랑한다고 말은 해야 하는데 정말 당황 되었다. 차라리 화장실에서 거울 보며 연습이라도 할것을 그냥 들어온것 같아 후회 막심이었다. 그같은 많은 생각으로 인해 나는 입을 열지 못하고 그냥 티나의 얼굴만 긴장하여 째려 보았고, 그런 나를 티나 또한 노려 보고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주저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떠듬거리며 다음과 같이 말한것 같다. "나는 크리스쳔이라 매일 아침마다 기도 하고 있다. 너하고 불편해서 계속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너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는것 같았다. 그래서 사랑한다라고 말하러 왔다. 내 하나님 때문에 너를 사랑한다!" 

고등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마치고 놀고 있는 자녀 하나를 더 둔 이혼한 티나 앞에서 이같이 말을 했으니 이제 과격한 티나가 어떻게 나올지는 하나님만이 아실 일이었다. 그 말을 내 뱉어 버리자, 이번에는 티나가 나를 노려 보았다. 처음보다 얼굴이 더 긴장되어 보였다. 쥐 구멍이 있으면 들어 가고 싶었다. 꼭 이렇게 해야 예수 믿는 것일까? 주립대학에서 하나님 이야기에다가, 남자 교수가 이혼한 여자 교수에게 사랑이라는 말을 사용했으니 결과는 어떨까? 그동안 나로 인해 자신의 마음도 몹시 상해서 꼬투리를 잡고 싶었을터인데 내가 하나님때문에 고스란이 당했다고 생각했다. 

등에 식은 땀이 흐르고 있음을 느끼며 나는 괴로운 순간을 맞이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났음에도 티나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더 괴로웠었다. 나는 "이제 하고 싶은 말 했으니 난 자리를 뜨겠다"라는 말을 남기도 그 자리를 도망쳐 나오고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티나의 눈이 젖기 시작했다. 그리고 표정이 풀려 감을 목격했다. 젖은 눈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맙다, 영길아!" 라고 말하며 계속 울고 있었다. 우리는 말이 없이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티나는 울고, 나는 어찌할줄 모르는데 어색하게 앉아 있었고. 

티나는 입을 열어 자신의 삶을 이야기 하기 시작했다. 남편과 25년전에 만나서 결혼했고 아이도 둘 있는데 남편을 떠나야 했었다. 남편으로 부터 많은 상처를 받고 살고 있었고, 부부 관계는 너무 어려웠다고 고백하였다. 아이를 하나씩 나누어 헤어지자고 하여서, 남편은 큰아이를 데리고 살고, 자기는 둘째 아이와 살고 있다고 하엿다. 그때의 상처가 너무 컷다고 한다. 남편이 너무 싫었고, 큰 아이는 너무 보고 싶었고... 이후 우울증이 자신을 다스리기 시작했고, 그로인해 삶은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아무도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이 이 세상에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고 했다. 그런데 자기 같은 사람을 누가 사랑한다고 하여 믿기 어려울 만치 기쁘다고 한다. 전에 남편이 프로포즈할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한적이 있을뿐 아무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우리는 아침을 그렇게 보내고, 각자 강의 하러 가야 했기에 우선 헤어졌다. 

나를 위해 중보하던 아내에게 오전에 티나와 있었던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 저녁 아내가 빨간색 장미꼿 24송이 (two dozens)를 사들고 티나네 집을 찾아 갔다. 문을 열어 주던 티나는 24송이 빨간색 장미를 받고 또 울더라는 것이다. 남편이 프로 포즈 하며 사랑한다고 할때도 빨간색 장미 24송이 였다고 한다. 아내는 그날 어느 가게에서 장미꽃을 대폭 세일을 하기에 two dozens를 산것일 뿐인데... 아내를 꼭 껴안으면서 고맙다라는 말을 연실하며 흐느끼는 티나를 뒤로 하고 아내는 집으로 돌아왔다.

이후 우리 부부는 티나의 집을 또 방문하였고, 서로의 삶을 이야기 하였다. 우리 부부는 주로 듣는 편이었다. 대학때 철없이 어느 남자를 만나서 관계를 갖고 딸 아이를 낳았지만 키울 수 없어서 입양기관에 넘겨준 아픈 사건으로 자신의 삶은 죄의식과 아픔으로 힘들었다는 이야기 부터 시작하여 많은 삶의 이야기를 큰 보따리를 풀듯 털어 내었다. 울고, 웃고, 또 울고... 우리는 이렇게 친구가 되었다. 주말에는 우리 두 아이를 돌보아 줄테니 영화를 보던 데이트를 하던 놀다오라고 하여 아이들도 몇번 맡아 주었다. 우리아이들에게 책도 읽어 주고 샌드위치에 꿀 발라 먹는 것도 가르쳐 주며 아이들을 아주 잘 돌보아 주었다. 

티나는 편집을 아주 잘하는 은사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함께 글을 써서 좋은 저널에 논문도 몇편 내기도 했다. 수년 동안 출판한 논문이 한편도 없었던 티나는 나와 글을 쓰면서 몹시 의욕에 차 있었다. 워낙 글을 잘 다음어 주어서, 나의 글이 티나의 손에 들어가면 아주 깔끔해 지는것을 보며 많이 놀랐다. 물론 나는 그것을 거침없이 표현했고, 티나는 그같은 나의 피드백과 저널 편집장으로 부터의 칭찬으로 글쓰는 일에 매우 의욕적이었다.

뿐만 아니라 티나로 인해 학생들의 불평도 적어져 가고 있었다. 동료 교수들도 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강의 평가가 여전히 나쁨으로 인해 티나를 내어 쫓느냐 아니면 기회를 주느냐 토론하며 각각의 교수들을 학과장이 만나고 있었다. 많은 이들이 티나를 내보내는것에 동의했지만, 나는 티나가 처음과 달리 아주 잘 하고 있음을 여러 근거를 사용하여 설득력 있게 설명했다. 그동안 둘이서 1년간 출판한 논문 세편은 학과 교수 15명이 쓴 논문 숫자의 합한것과 같았다. 결국 학교는 티나에게 기회를 주기도 했다.

이즈음에 나는 다른 어느 주립대학에서 오퍼를 받았다. 그래서 떠나야만 하는 상황에 있었다. 오퍼 받은 대학은 티나가 전에 박사학위를 받은 대학이라 아주 기뻐 하였다. 물론 섭섭함으로 실망도 하였지만... 그곳에 집을 팔지 못한채 새로 이사갈 곳에 집을 사야 하였기에 금전적으로 아주 어려웠다. 사고 싶었던 집은 방이여섯개라서 학생들이 편안히 와서 쉬어 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2-3분 걸어가면 공원도 있어서 청년들에게 너무 좋을것 같아 꼭 사고 싶었다. 그러나 그집에 누가 조건부 오퍼를 이미 넣은 상태이었다. 오퍼를 넣은 사람은 자신의 집을 팔면 그 돈과 융자금으로 사는 것을 조건으로 하였기에 우리가 은행의 융자를 얻을 수 있으면 그 오퍼를 제끼고 살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은행에서 융자가 나왔지만 약속된 수일내 까지 현금 $5,000이 있어야 부동산 (집) 구입이 체결 (closing)되는 것이었다. 아무리 해도 $5,000이 나올길이 없었다. 

티나는 아내와의 교제 속에 우리의 이같은 실정을 들었던 모양이다. 이사를 앞두고 엘리베이터도 없는 4층 학교 사무실에서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짐을 싸고 있었다. 한참 짐을 싸는데 티나가 얼굴에 땀이 범벅이 된체 내 사무실을 급히 들어섰다. 4층에서 부터 더운날 걸어 왔으니 더웠을 것이다. 그런데 씩씩 거리는것 보니까 뛰어 온것 같았다. 반가워서 웃으면서 자리에 앉으라고 했더니 두툼한 두 주머니에서 쌍권총을 빼듯이 현금을 빼어 드는 것이다. "내 부모로 부터 거저 받은 돈이니 나도 네게 거저 주는 돈이다. 몇일 후 집 closing할때 사용해라! 갚을 생각 안해도 된다. 내가 너희 집 방문 하며 그냥 공짜로 잠만 재워주면 된다!" 그렇게 말하고는 사무실을 빠져 나가 버렸다. 

결국 새로운 곳에 집을 샀다. 그리고 먼저 집은 한달 후 팔 수 있었다. 덕분에 $5,000을 티나에게 되돌려 줄 수 있었다. 근사한 선물과 더불어. 새로운 곳에 이사간 이후 어느날 집 고칠때 사용하는 도구가 100개가 있는 파란색 도구박스 (Tool Box)를 문앞에서 발견했다. 티나가 5시간 운전해서 새로산 집 문앞에 도구박스를 두고 간것이다. 그 도구 박스 위에 다음과 같은 메모가 적혀 있었다: "집고칠때 필요로 할것 같고, 네 집에는 그같은 도구박스가 없는듯 하여 네 집에 놓고 간다. 잘 사용하도록 해라!"  내 눈에 눈물이 고였다. 나는 주님때문에 억지로 사랑한다고 말한것 뿐인데, 너는 네 마음을 담아 내게 사랑을 주고, 또 돈도 주고, 보너스로 툴 박스 까지도 주고... 

이 기적이 갑자기 생각이 났다. 조그만 순종으로 경험한 이 사건은 내게 하나님의 크심을 늘 상기 시킨다. 우리에게 사랑하라 하신다. 그 이웃이 내게 어려움과 해를 끼치는 사람일지라도

사랑은 댓가를 지불 해야 한다고 믿는다. 나같이 형편 없는 인생을 사랑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면 이 세상에 사랑하지 못할 대상이 없다. 그리스도의 제자로 캠퍼스로 부름 받고 그곳에서 훈련 받고 있는 우리들은 우리가 가는곳 마다 사랑의 기적, 사랑의 혁명을 이르켜야 한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 (요 13: 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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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샬롬 2009/08/13 11:20  Addr Edit/Del Reply

    이영길 교수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순종을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신 사랑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얼마나 기다리시고, 또 기뻐하셨나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런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기를 다짐해봅니다.

  2. 최장환 2009/08/13 13:05  Addr Edit/Del Reply

    교수님 하나님의 손길이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교수님의 경험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 은혜 온전히 느끼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3. 지승만 2009/08/27 20:59  Addr Edit/Del Reply

    교수님 잘지내셨는지요?

    얼굴을 뵙지못하지만 이렇게 인터넷을통해 교수님의 글을 읽으며
    마음이 다시금 푸근해 지는것 같습니다.

    사람을 사랑하는것, 저역시 한동안 이 문제로 많이 고심하고
    힘들어 했었던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분명한것은 우리 인간이 어떠한 방법으로 계획을하고
    어떤 이중된 마음으로 상대를 대하든,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국 우리는 거짓된 모습으로 상대를 대할수 밖에 없고 언젠가는 다시
    그 관계가 깨어질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교수님의 귀한글 감사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도록 항상 노력하겠습니다.

누구를 만나면 흔히 받는 질문이 직업에 관한 것이다. 어떤일에 종사하냐는 질문에 나는 흔히 대학 교수라고 짦게 대답하곤 한다. 그러나 대학교수라는 대답과 함께 금방 되돌아오는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전공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역시 주저치 않고 "치료 레크리에이션" 혹은 "레크리에이션 치료"라고 대답하곤 하였다. 미국에서 대학교수로 지내면서 나의 대답은 적어도 이랬다. 그리고 그같은 대답은 나의 삶의 상태를 정확히 반영 하고 있었다. 나를 나로 정의 지을 수 있었던것도 바로 전문 분야와 그 분야에 종사하는 교수라는것으로 나를 철저히 국한 시켰던 것이다. 내가 예배자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야하는 귀한 사명은 교회나 성경공부에서나 고백해야하는 그런 악세사리로 여긴것이다. 

누구든 이제 내게 전공을 묻는 다면 나의 대답은 전과 같지 않음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나의 대답이 다음과 같기 때문이다: "나의 전공은 레크리에이션 치료와 예배 입니다!" 예배라는 새로운 전공이 내 삶에 따라 붙으면서 사실상 요즘 전공에 못지 않게 예배를 많이 생각하고 묵상하며 삶의 실천을 계속적으로 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전공 과목을 파헤치고 연구할때 나는 나의 다른 전공인 예배에 대한 지식과 태도를 가지고 학문에 임하게 된다. 글을 쓸때도 그렇고 강의실에서 강의 할때, 학생들과 상담할때에도, 교수회의 에서도, 학술지 논문심사중에도 마찬가지이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만을 경배하고 그분께 나의 사랑을 전폭적으로 표현하는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흠뿍 받는 일이다. 이같이 하나님과 나 사이에 오고 가는 친밀한 사랑으로 인해 예배는 기쁨과 감동이 반드시 따른다. 그리고 나의 죄와 이땅에 만연한 죄의 흔적들로 인하여 눈물 흘리며 회개도 한다. 무엇보다도 예배는 나를 최대한 낮추고 하나님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다. 예배를 통해 나는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 만큼 나를 더 알아 가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더 해질 수록 내가 공부 하는 대상인 하나님의 창조물인 인간에 대한, 그리고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 진다.

또 다른 나의 전공이 예배 인지라 나는 "레크리에이션 치료"와 관련된 제반 활동영역들을 함부로 대할 수 없다. 예배가 전공인 나로서 대충 강의 준비를 하고 들어 갈 수 없다. 예배가 전공인 나는 나의 다른 전공인 레크리에이션 치료에 관한 글을 쓸때 대충 끄적거려 낼 수 없고, 남의 생각을 이리 저리 조각지어 살짝 새롭게 하는 치졸한 글을 쓸 수도 없다. 학생들 상담 하고 만날때도, 전화 받을 때도 그렇게 할 수 없다. 내가 높아 지려고 강의 할 수도 없고, 내 이름 높이려고 글을 쓰려고 할 수도 없다. 이로 인해 인간 중심의 사로로 만들어진 지식체계안에서 죄의 흔적들을 들추어 내고 이를 하나님중심의 사고로 다시 비판하고 묵상하려 애쓰게 된다.

그래서인지 삶 자체가 너무 재미 있다. 교수생활에 신명이 난다는 말이다. 전문직의 삶이 예배임에 그곳에는 은혜가 넘친다. 은혜란 나의 공로와 관계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인바, 공부를 하면서, 전공분야로 세상을 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통찰과 지혜가 그때 그때 주어져 흥분이 된다. 그러나 이렇게 사는것이 쉽지는 않다. 많은 싸움이 있다. 예배의 태도를 잃고, 예배의 대상이 세상 혹은 내가 될때도 있다. 철저한 자기 성찰과 회개를 늘 동반하는 치열한 싸움이 따르게 된다.

그러나 나는 이같은 삶의 전환을 매우 감사히 여긴다. 노파심에 한가지 더 설명해야할것이 있다. 내가 말하는 예배라는 전공은 "예배학"이라는 전공을 칭하는것이 결코 아니다. 나는 예배에 관한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기에 예배학이라는 전공을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단지 예배의 삶을 사는 우수한 예배자로 살고 싶고, 영원한 예배가 있을 천국에서의 삶을 이곳에서 연습하며 더 누리며 살고 싶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예배가 학문 분야 보다 앞선 주 전공이라고 대답하고 싶지 않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더 기뻐 하시지 않을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지금의 전공의 분야를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는 도구로 쓰라고 부여하신 것이기에 그것이 예배의 뒤에 물러 서지 않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이 둘은 분리 될 수 없는 하나되야 하는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하나이듯), 다시 말해 통합되어져야할 과제인 것이다. 이는 또한 이 세상에서 학문을 하며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살아가는 사람이 마땅히 지녀야 할 삶의 방식이기 때문이다. 학문과 신앙의 통합을 이루어 내는 가장 근본이 바로 이원론의 삶 (삶과 예배, 전공과 예배)을 떠나, 신앙과 전공이 (또 신앙과 매일의 삶이) 일원화 되는 삶에 있다고 나는 믿는다. 학문과 삶은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에 의해 영위되어 지는것 이기 때문이다.

혹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전공과 예배가, 삶과 예배가, 주일과 주중의 삶, 교회 안과 밖의 삶이 다른 이중적 삶을 살고 있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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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땐 더 크고 싶었다. 나보다 좀 더 크다고 뽐내는 이들의 머리를 주어 박고 싶어 서였다. 좀더 커지니, 그것 보다 더 크고 싶었던 것이 나보다 더 큰 이들이 있어서 였다. 

1984년 겨울에 미국으로 유학을 왔다. 어릴때 처럼 몸이 더 크고 싶어 서가 아니 였다. 사회적으로 크고 싶었고, 영향력의 힘을 키우고 싶어서 였다. 그래서 학교 선정할때도 내게 능력의 키를 더해 줄, 영향력의 힘을 더해 줄 그런 학교를 찾았다. 지도 교수도 그렇게 힘있고 능력의 키가 큰 자를 선택하려고 했다. 

대학 교수가 되어 서도 마찬가지 였다. 처음에 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로 가게 되었다. 별로 알려 지지 않은곳이였다. 하바드 대학이나 MIT, UCLA, 예일 등 좋은 브랜드 네임의 학교가 아니여서 어느 학교 교수냐고 누가 물으면 플로리다의 조그만 주립대학이라고 말을 했다. 어느 후배가 내가 근무하던 학교 이름을 물어서 알려 주자 "선배님, 그것은 서울에 있는 국제대학* 같은 학교 아니예요?" 라는 질문에 내가 있는 대학이 모국의 서울대, 연세대, 및 고려대학 같이 유명세가 없어서 "서울에만 국제 대학이 있냐? 플로리다에도 있다!"고 대답하며 내심 시큰둥 했다 (* 나는 국제대학의 가치를 폄하하는것이 아니고, 나의 잘못된 가치관에 대한 고백을 하는것이다). Ohio University에서 교수할때도 모국의 선.후배들이 학교 이름 물을때 마다 꼭 토를 다는것이 있었다. Ohio Stat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Ohio University는 어디에???? 더 크고,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을 주지 못하는 학교에 있다는 것으로 나의 교수 직분을 그냥 그렇게 가격을 싸게 정해 버린것이다.

이후 인디애나 대학에 왔다. 내깐에는 더 이상 올라갈곳이 없다고 여기던 그런 학교였다. 그러나 그 대학 역시 모국에서 잘 알려진 대학이 아닌지라 나의 어머니 조차도 별 입맛이 없는듯 아들이 일하는 대학에 대해 더 알려 하지 않았다. 공대출신의 어느 친구는 Purdue University는 들어 보았지만 Indiana University라는 대학은 있는지 조차 몰랐다고 반응하기도 했다. 나는 남들이 붙여 주는 브랜드 네임으로 나를 저울질 하려 했다. 어디 까지가야 만족이 있을까? 얼마 만큼 더 올라 가야 마음에 진정한 기쁨이 있을까?

이제 칼빈 대학에 왔다. Calvin Klein이라는 브랜드는 알아도 Calvin College를 모르는 이들에게 이것은 아주 보잘것 없는 학교로 보인다. 길에서 지나가다가도 학교 건물조차도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아담한 학교이다. 우리어머니 표현을 잠시 빌려 표현해 보면 "학교도 작고 건물도 작아 보여서 손을 조금만 올리면 지붕을 만질 만한 조그만 학교"에 지금 와 있다.

그런데 달라 진게 있다. 전에는 더 크고, 더 잘 알려 지고, 더 영향력 있는 대학을 동경하여 "상향지향적" 사고를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그 같은 가치를 화장실에 flush시켜 버린지라 남의 반응에 관심이 없어 졌다. 하나님 부르신곳에 내가 서 있으면 그곳이 황량한 사막일지라도 그곳이 내게 제일 가치 있는 곳이다. 내가 더 올라 가려고 하기 보다 내가 있는 곳에서 나 보다 그리스도가 더 높아질 일이 무엇일까를 순간 순간 생각하며 바라는 일은 나를 기쁘게 한다. 나를 부르신이가 너무 크기에 그 분이 가라고 하는 그곳은 내가 어떤 이름을 붙이며 가치를 부여할 수 없는 그런곳임을 안다. 그래서 그곳이 내게 가장 적합하고 귀한 곳임을 은혜로 알게 되었다.

전에는 속아서 나의 성취를 위해 목숨걸고 애썼다. 많은 노력을 통해 나를 크게 하려고 애썼고, 그럼에도 커 보이지 않아서 나보다 더 큰 대학의 이름을 나와 동일시 시킴으로 나의 성공을 표현해 보려 애쓰기도 했다. 내 분야에서도 나의 이름을 돋 보이게 하기 위해 다른 명칭들을 추구 했다. 유명 학술지의 편집장, 연구소의 디렉터... 그같은 것으로 영향역의 범위가 큼을 표현하고 또 성공이라는 잘못된 가치를 달콤하게 즐겼던 것이다. 

내가 작아 지면 작아 질 수록 그리스도의 이름이 더 커지고 위대해 지는 그 비밀을 이제는 기쁘게 여기며 살게 된다. 그리스도는 가난과 낮은 지위로 일생을 보내신 후에 거기서도 더 낮은 곳인 골고다로 가셨고, 너무나도 잔인한 곳에서 누워서 돌아가시지 못하고 십자가에서 세워지신채 돌아 가셨다. 전에는 내 입에서 얕은 입술로 부르짖던것을 이제는 내 마음속에서 아멘하며 받아 들이는 진리가 있다. 다음의 말씀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을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고 죽기 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빌립보서 2: 5-8).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그곳, 비단 그곳이 남들이 높이 평가하는 그런 곳이라도, 자신이 그리스도보다 더 커지지 않으려 하고, 오직 그리스도만 더 높아 지는 삶을 산다면 그것 역시 매일 작아 지는 삶일 것이다. 칼빈대학은 내가 몸 담고 있기에도 과분한 곳이다. 그러나 나를 믿고 이곳으로 보내신 하나님을 오늘도 찬양한다. 그리고 그분만이 높아 지도록 오늘도 더 작아 지고 싶다. 나의 섬김의 목적은 내가 작아 지고 오직 그리스도만 높아지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섬김의 능력은 내가 아니라 내가 작아 질때 하나님의 큰 능력이 나를 통해 나타나는데 있음을 믿는 믿음 안에 사는 것이다.

내 눈과 마음이 죄로 인해 이그러진 세상의 왜곡된 진리로 더 이상 속지 아니하고 매일 매일 더 작아 짐으로 그리스도가 삶속에서 더 커지는 그런 삶을 살고 싶다. 그래서인지 나는 하루 하루가 기쁘고 감사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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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 년의 일이다. 그때 나는 오하이오대학의 교수로 있었다. 쿼터 (Quarter)제도 였기에 모든것이 빨리 돌아가 사실상 강의하기에 몹시 바빴다. 한 쿼터에 4개의 과목을 가르쳤다. 어떤 강의는 50분 강의 였기에 일주일에 세번 들어가야 하는데 그같은 강의가 두개, 또 일주일에 두번 들어가는 강의 두개. 이같은 스케쥴에 의하면 출근하고 부터는 점심식사 및 한.두개의 회의 참석을 제외하고는 강의실에서 살아야 하는 몹시 바쁜 하루 하루의 일정이었다.

조교수 였기에 테뉴어 (Tenure)도 생각해야 했고, 또 열심히 공부해서 내 분야에서 제일 좋다는 대학으로 가고 싶은 욕망도 있었다. 나는 그 당시도 또 지금도 연구활동과 글 쓰는것에 대해서는 각별한 생각과 야심이 있었다. 그같이 바쁨에도 불구하고 매년 3편의 논문을 학술지에 게제 하였으니 얼마나 열심히 공부 했는지 상상하기가 어렵지 않을것이다. 참으로 바빴고, 힘들었다.

그때 나는 귀한 목사님을 만났다. 지금도 나의 멘토이신 이근상 목사님이다. 그분은 매주 두번씩 콜럼버스로 부터 내려와 금요일은 성경공부 가르치시고, 주일에는 콜럼버스예배 마치고 얼른 내려 오셔서 설교하시고 떠나시곤 했다 (지금도 그렇게 하고 계신다). 성경공부가 얼마나 달콤했는지. 그때는 학업도 중요했지만 제자훈련 제대로 받고 싶은 생각이 컷다. 그래서인지 금요일이 기다려 졌고, 또 매번 성경공부를 통해 받는 은혜는 너무 컷다. 주의 말씀이 어찌 그렇게 달콤했던지... 어떤 질문이든 너무 명료하게 가르쳐 주신 이근상 목사님의 성경공부를 몹시 좋아 했다. 

뿐만 아니라 주일 예배 마치고 그냥 가지 않으시고 또 성경공부를 하시자고 하며 조금이라도 더 훈련시키시는 목사님의 인도함을 철저히 따랐다. 나는 그를 그래서 유격훈련장의 조교 같이 무자비하고 지독한 목사님이라고 속으로 부르곤했다. 몸이 힘들어도 죽어라 제자훈련 시키고 콜럼버스로 올라가시는 분이니까...

그렇게 1년반을 바쁘게 보내고 있을때 Indiana University로 부터 교수 포지션이 하나 났으니 혹 지원해 보지 않겠냐는 편지가 날아왔다. 내 이력서를 들여다 보아도 별로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내 분야의 교수들의 이력을 보아도 내것이 우월하게 느껴질 정도로 좋은 학술지에 제법 글을 많이 낸 편이었다. 그래서 한번 응모해 볼까 생각했다. 한 쿼터에 4과목하여 1년에 12과목을 가르치는 대학에서 떠나 1년에 4과목 (매학기 2과목) 가르쳐도 되는 대학으로 가는것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인디애나 대학은 나의 전공분야에서는 제일 좋은 대학으로 여겨 졌기에 객관적으로 학자로서의 나의 성공을 나타내는 절호의 기회이지 않았나 생각해보았다. 뿐만 아니라 그곳 교수가 되는것을 몽상으로 그리며 잠시 환호에 젖기도 했다. 그리고 내심 하나님께 졸라내어 그곳으로 꼭 가야지 마음먹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게 마음먹고 기도하면 할 수록 내 마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생겼다. 당시 새벽기도를 인도하며 은혜받고 있었는데 나의 기도는 허공을 치고 있었다. 인디애나 대학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는데 하나님의 응답은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어야 될것이라는 마음의 부담을 주시는것 같았다. 특히 당시 구약과 신약을 개관하는 성경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이제 1년만에 구약이 끝난 상태였고, 신약의 초반부분에 있었다. 기도할 수록 그 성경공부가 아직 마쳐지지 않았음을 하나님께서는 내게 상기시켜 주시는것 같았다. "너 그것을 끝까지 마칠 수 없겠니?"라고 물으시는것 같기도 했다. 너무 슬펐다. 그냥 응모 하라. 그 뒤는 내가 책임지겠다. 너는 그곳으로 반드시 가리라... 뭐 이런 메세지를 주면 눈물 콧물 흘리며 감사해 할텐데... 그리고 그렇게 보내시면 하나님 위해 열심히 봉사하겠다고 서원도 하며 용기를 낼 텐데... 하나님은 내가 오하이오 대학에 남으시기를 원하시는것 같았다.

그같은 불편한 마음이 지속되자 내 마음에는 포기의 마음이 생겼다. 내가 갈길이 아니구나. 나는 이곳 오하이오 대학을 잘 지키고 있어야 되나 보다. 뭐 이렇게 생각하며 포기했다.  

응모 마감이 훨씬 지나 몇달후 매해 열리는 내분야의 학회를 참석했다. 참석해서 바로 들은 이야기가 옛날 오레건대학에서 박사 할때 그곳에서 석사를 했고, 또 조지야대학에서 포닥할때 박사과정학생이었던 어떤 여자아이가 내가 가고싶었던 대학의 교수로 새로 부임했다는 것이다. 그아이는 연구 실적으로 보면 나와 비교도 안될 만치 뒤지는 아이였다. 또 나는 오하이오대학에서 학생들의 강의 평가가 가장 줗은 교수중 하나였기에 강의능력 면에서도 그 아이이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도 떠올랐다. 또 우리분야에서 좋은 저널의 Associate Editor뿐 아니라 다른 서어비스도 제법 하여 여러가기 면에서 뒤질것이 없던다고 느꼈다. 그래서 그날 호텔방에 들어가 혼자 눈물흘리며 궁상맞게 밤을 새우며 슬퍼했다. 많이 울었던것 같았다. 

이제 인디애나 대학의 교수로 가려면 기존의 교수들이 은퇴하기전에는 자리가 없을것이고, 그들이 은퇴를 하려면 최소한 10년이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당시 뛰어난 다른 대학의 우리 프로그램에서도 교수채용 공고가 없었던 터이라 나는 참으로 암담했다. 차라리 하나님께 묻지 말고 그냥 응모할것을... 하나님께서 찬성하지 않으셔도 그곳 가서도 신앙생활 잘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실까??? 뭐 이런 저런 생각을하며 식사도 제끼고 슬픔으로 그 학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왔다. 

어짜피 오하이오에 있는 몸이니 그냥 성경공부 열심히 하며, 그곳의 학생들 죽어라 섬기고, 부지런히 전도하며 보내자 마음을 고쳐 먹었다. 그러니 시간이 빨리 갔다. 그러는 가운데 우리분야에서 주는 최고의 연구상도 그 다음해에 받았다. 내가 학술대회를 가지 않았기에 학회의 학회장이 직접 오하이오대학으로 방문하여 상을 전해 주었다. 부족한 사람에게 그같은 상을 주는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권적인 일하심이 있지 않았나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드렸다. 나의 포기는 적었는데 너무나도 큰 상을 받아서 어쩔줄 몰랐었다. 

이보다 더 큰 기쁨은 이제 구약과 신약을 살펴보는 그 성경공부가 마쳐진 것이다. 성경의 전체 그림이 머리속에 구체적으로 그려지고, 나의 믿음도 더 확고해 지며, 주님의 음성에 더 민감한 삶을 살게 된것이 내게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바로 그때 인디애나 대학으로 부터 편지가 왔다. 그전 해에 오기로 했던 교수가 오지 않아서 다시 교수를 뽑아야 하는데 혹 응모하지 않겠냐는 내용이었다. 이번에도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여쭈었다. 하나님, 이곳도 좋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면 그리고 가겠습니다. 그러나 원치 아니 하시면 이곳에서 학생들 섬기며 감사히 지내겠습니다... 뭐 이렇게 기도했던것 같다. 하나님의 응답은 분명치 않았다. 그래서 계속 기도해 보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내 마음에 불편함 보다는 하나님의 숨은 사역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궁금해 하며 응모해 보는것이 어떨까 하는 마음이 생겨났다. 

물론 응모 하였다. 그리고 인터뷰에 초대 받았다. 인터뷰하면서 내가 꼭 오기를 바라는 사람들 같이 모두 내가 이미 그 대학의 교수인양 대접해 주었다. 그리고 청빙위원회의 위원장이었던 데이브는 "월급 흥정할때 담대하게 가격을 불러도 되니까 흥정에 shy하지 말라!"고 조언도 해주었다. 보통 반응이 이렇게 되면 인터뷰가 잘되었다는 사인이 된다. 그날 저녁 내가 지냈던 Indiana Memorial Union안의 호텔에서 밤을 꼬박 세웠다. 너무 신이나서였다. 

집에 돌아온 이후 약 1주가 지났던것 같았다. 학교에서 Offer가 왔다. 내가 제시한 연봉에 아주 가깝게 응해 주었다. 문제는 하나님의 응답이었다. 학교에서는 1주일 이내로 답을 달라고 하는데 나는 아직 하나님께서 가라는 음성을 듣지 못해 그것을 듣고 계약서에 사인하고 싶었다. 문제는 1주가 다 되는 데도 하나님의 침묵 깨어지지가 않았다. 그냥 사인해서 보내버려하지! 하며 마음 먹었다가도 곧 그럴 수 없다고 여겨서 금식하며 마지막날의 기도를 드렸다. 그날 오후 아내와 아이들이 집을 비운뒤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여쭈었다. 하나님의 침묵이 깨어졌다. 여호수아 1장를 열어서 읽어 보라고 하시는것 같았다. 나는 쭉 읽어 가며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허락하시는 음성을 들었다. 

이후 나는 그곳에서 9년을 교수생활 했다. 그곳에서 2004년도에 테뉴어를 받았다. 학과의 50년 역사에 모든 교수가 강의 (teaching)으로 테뉴어를 받았을뿐 연구로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학과 역사상 처음으로 연구업적으로 테뉴어를 받았다. 모든 커미티로 부터 만장일치의 찬성을 받기가 쉽지 않은데 나는 만장일치로 테뉴어를 얻었다. 그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 였다. 포기로 얻어진 직장이었고, 포기로 얻어진 은혜였다. 

반드시 좋은 학교로 가는것만이 하나님의 축복은 아니라고 지금은 생각한다. 가장 큰 축복은 하나님께 순종하는것 이라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그 마음을 받으시고, 그 마음 때문에 기뻐 하신다. 나는 지금 칼빈대학에 와 있다. 연봉은 몇만불이 더 적다. 강의는 전 인대애나 대학보다 훨씬 더 많이 한다. 그러나 인디애나대학을 포기하라고 했을때 그 순중 자체가 내게는 축복이었다. 주안에서의 포기는 하나님의 전적인 인도하심과 임재하심을 동반하는 귀한 축복이 따른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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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Will 2010/02/03 15:47  Addr Edit/Del Reply

    하나님의 음성에 민감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귀한나눔 감사합니다.

  2. 피타 2010/05/08 14:51  Addr Edit/Del Reply

    귀한 간증 감사합니다.

오래전 이야기이다. 어느날 사랑하는 어떤 형제가 나의 사무실에 들렸다. 너무 반가웠다. 반가움과 동시에 또 놀라버렸다. 형제의 머리털이 보이지 않아서 였다. 머리털 다 어디에 두고 왔냐고 물었다. 형제는 머리털 없는 머리를 극적거리며 "지난밤 삭발배 버렸어요!"하고 대답했다. 삭발을 해야할 어떤 큰 결심이 있냐고 물었다.

형제가 삭발은 한것은 영어 때문이었다고 한다. 영어가 자기때문에 고생하고, 자기도 영어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다. 맞는 말이다. 미국온지 6개월정도 밖에 안되었는데 유창하게 나오지 않을 것이다. 특히 대학원 수업은 토론위주인데 강의 들어갔다가 기침한번 하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하는 영어를 듣고 나와야 하는 아픔은 너무 크다.

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였다. 미국유학 첫학기 수업에서 강의실이 다음부터는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교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해 같은 방에서 한시간정도 기다리다가 화가 나서 교수에게 달려간적이 있었다. 휴강을 하려면 칠판이나 강의실 문에 휴강사인을 붙이기라도 할것이지 남의 귀한 시간 그렇게 무시할 수 있느냐 (나는 그렇게 말한다고 머리속으로 생각했지만, 실제 나온 말은 어떻게 나왔는지 모른다) 뭐 그렇게 안하무인격으로 화가나서 항의한적도 있었다. 교수가 웃으면서 결석을 하려면 미리 교수에게 통지하는것이 예의 인데 왜 무단결석을 하느냐라고 되물었다. 물론 나의 논리로 나의 질문에 대답했지만, 친절하게 앞으로의 강의가 다른 빌딩 103호에서 있을것이라고 하며 쪽지에 적어주며 나를 돌려 보냈다.

다시 삭발한 형제의 이야기로 되돌아가자. 형제는 영어를 잘할때 까지 삭발은 물론 앞으로 시리얼 (cereal)만 먹고 지낼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시리얼 (cereal)만 먹다가 유학와서 객사할것 같아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얼른 자리에 앉아서 나와 이야기하며 진정하자고 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밥하고 김치먹고 힘을 내라고 권유했다. 왜냐면 영어가 잘되려면 몇년이 걸려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주로 유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은 강의실 아니면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그외에는 외로우니 한국학생들끼리 모여서 식사도 하고 테니스도 치면 놀기도 한다. 금요일 저녁에는 한인교회에서 하는 성경공부를 가고, 일요일은 한인교회에서 우리말로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지내다 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은 거의 없다. 강의실 벙어리에다가, 도서관에서 책빌릴때 2-3분 사서와 대화하는것, 식당에서 무엇을 주문할때 몇마디 하는것을 제외하면 영어를 향상시킬 기회가 전혀 없다. 

삭발한 형제뿐 아니라 이렇게 영어로 고생하는 유학생들에게 내가 한결같이 하는 이야기가 있다. 양로원이나 장애인들이 있는곳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라고 권유한다. 자신이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곳에 가서 잘 하던지 못하던지 떠들어야 하는 상황에 놓여져야 한다. 양로원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죽을 입에 넣어 드리면서 한국이야기도 하고, 전공이야기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다. 외로운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도 감사히 서툰영어를 들어 준다. 짜증내지도 않는다. 워낙 외로운 분들이 많다보니 자신과 있어주는것 만도 감사해 한다. 

양로원에 있는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다. 유학생때 만난 어떤 할아버지는 교육학과에서 연구방법론과 통계를 가르친 은퇴교수였다. 책도 몇권 썻다고 한다. 통계로 고생하던 나는 할아버지께 기본 개념을 배워 아주 잘 사용한적이 있다. 

나는 미국에 온지 2년 반만에 전공필수과목을 가르친적이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 강의를 들었던 학생들이 얼마나 불쌍했는지 모른다. 열심히 강의도 준비했지만 그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그들의 눈동자를 보았을때 도무지 잘 알아들은것 같지 않고 불쌍해서 강의를 들어주는것 같은 생각만 지배했었다. 그러나 다음학기에 또 강의를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는 매우 기뻐한적이 있다. 물론 다른 사람을 찾지 못한탓이 더 컷을 게다. 지금생각해 보면 그나마 헤메면서 영어로 강의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자원봉사경력이 큰 도움을 주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나는 일주일에 10시간정도 장애인들과 시간을 보냈다. 어떤날은 그들과 2박 3일 캠핑을 떠나기도 했다. 물론 장애인들의 레크리에이션을 담당하는 기관에서 가는 것이기에 교통편의, 음식, 침낭 등 모든것을 그곳에서 준비시켜 주었다. 나는 자원봉사를 통해 미국의 문화도 배웠고, 친구도 많이 사귀었다. 그때 사귄 미국친구 (장애담당 디렉터)의 소개로 그 아이의 부모집에서 약 2년을 살기도 했다.

우리는 우리의 것을 줄때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 영어도 배우고 기쁨과 보람을 찾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삭발보다는 더 기가 막힌 영어 공부 방법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할아버지, 할머니, 장애인들의 발과 손을 씻으며 사랑을 나누는것은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는 일이다. 사회에서 그 가족 조차도 찾지 않은 소외된 많은 이들이 있다. 집이 없는 Homeless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자원봉사도 있고, 집없는 사람 집을 지어주는 Habitat of Humanity (http://www.habitat.org/)도 아주 좋은 기관이다.

엉어는 말을 배우기위함이 아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들을 섬기고 사랑하기 위함이다. 언어는 사랑을 전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질때 바른 언어를 구사 할 수 있다. 칼빈대학의 동료인 바바라 카빌교수는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Foreign language education prepares students for two related callings: to be a blessing as strangers in a foreign land, and to be hospitable to strangers in their own home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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